[편집자 주] 금속노조는 지난 3월 2일 54차 정기대의원대회에서 11기 2년 차 사업계획과 2021년 투쟁방침을 바탕으로 2021년 통일요구안 산업전환협약 쟁취를 확정했다. 노조가 어떤 상황 인식으로 올해 교섭목표를 마련했는지 다섯 차례에 걸쳐 싣는다.

금속노조는 ‘정의로운 산업전환’을 요구한다. ‘정의로운 산업전환’은 1970년대 미국의 석유·화학·원자력노조(OCAW)의 지도자였던 토니 마조치(Tony Mazzocchi)가 제안한 개념이다. 환경파괴 산업을 지속가능한 산업으로 전환하는 방향을 노조가 수용하되, 이 과정에서 노동자의 일방 희생을 막고 새로운 일자리로 이동할 수 있도록 교육과 생계 등을 보장하자는 주장이다.

캐나다 에너지화학노조는 마조치의 제안을 수용해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으로 이름 붙인 뒤 1999년 캐나다노총(CLC)의 정책에 포함했다. 2000년대 국제노총은 이를 노동운동 전략으로 공식 채택했다.

이후 국제노총의 줄기찬 요구로 2015년 유엔은 ‘정의로운 전환’을 기후변화회의의 파리기후협약 전문에 반영했다. 2015년 파리기후협약 이후, 전 세계 정부·기관들은 노동조합이 만든 개념인 ‘정의로운 산업전환’을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2019년 5월 수립한 3차 녹색성장 5개년 계획에 ‘정의로운 에너지전환’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한국 정부는 대체로 ‘정의로운 전환’보다 ‘공정한 전환’이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최근 국회는 여야를 막론하고 탄소중립 실현이나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기본법, 특별법을 쏟아내고 있다. 이들 대부분 ‘정의로운 전환’을 명시하고 있다.

정부·정치권의 노동자·취약계층 배제 ‘산업전환’은 기만

최근 정치권이 낸 법안들은 ‘정의로운 전환’을 ‘노동자 등 취약계층의 피해를 최소화’한다거나 ‘근로자 등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정도로 한정한다. 정의로운 산업전환을 구체적으로 강제할만한 문구나 체계가 법안 어디에도 없다. 한마디로 ‘노력은 하되 안 되면 어쩔 수 없다’라는 수준이다.

정부 정책 역시 공허하긴 마찬가지다. 금속노조는 문재인 정부의 산업전환 정책이 철저히 재벌 중심·노동 배제 성격을 띠고 있으며, 무엇보다 전환 정책 자체를 재벌·대기업에 맡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자 등 취약계층을 보호해야 할 정부가 책임을 내팽개치고 말로만 ‘정의로운’ 또는 ‘공정한’ 전환을 외치는 행태는 기만이다.

정의로운 산업전환의 ▲첫 번째 방향은 양질의 일자리 유지·창출이다. 정의로운 산업전환의 ▲두 번째 방향은 노동이 기술과 조화를 이루며 자유롭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산업환경 구축이다. 정의로운 산업전환의 ▲세 번째 방향은 공공성 강화다. 금속노조가 6월 1일 창원에서 2021년 7차 중앙교섭을 벌이고 있다. 사진=신동준
정의로운 산업전환의 ▲첫 번째 방향은 양질의 일자리 유지·창출이다. 정의로운 산업전환의 ▲두 번째 방향은 노동이 기술과 조화를 이루며 자유롭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산업환경 구축이다. 정의로운 산업전환의 ▲세 번째 방향은 공공성 강화다. 금속노조가 6월 1일 창원에서 2021년 7차 중앙교섭을 벌이고 있다. 사진=신동준

‘정의로운 산업전환’ 세 가지 방향 … 양질의 일자리·노동안전·공공성

금속노조는 ‘전환’ 대신 ‘산업전환’이라고 명시한다. 산업(産業)은 생산 활동을 의미한다. 금속노조는 이를 통해 생산 활동의 변화 과정을 정의롭게 만드는 일에 초점을 맞춘다. 아직 한국 사회에선 다소 낯선 ‘정의로운 전환’이라는 용어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서다.

정의로운 산업전환의 ▲첫 번째 방향은 양질의 일자리 유지·창출이다. 단순히 취약계층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수준으로 산업전환을 핑계 삼아 저임금의 질 나쁜 일자리를 늘리려는 자본을 막기 어렵다.

정의로운 산업전환의 ▲두 번째 방향은 노동이 기술과 조화를 이루며 자유롭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산업환경 구축이다. 최근 플랫폼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이 논란이다. 플랫폼 노동은 기술발전으로 늘어난 새로운 일자리가 노동자의 자유와 안전을 위협하는 대표 사례다. 따라서 기술발전 방향을 올바르게 되돌리자는 내용을 정의로운 산업전환에 담아야 한다.

정의로운 산업전환의 ▲세 번째 방향은 공공성 강화다. 기업이 이익을 독점하는 산업전환은 설사 기후위기 대응에 보탬이 된다고 하더라도 공공성을 악화해 바람직하지 않다. 산업전환은 사회보험제도를 개선하고, 노동자와 취약계층이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서비스를 누리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

노동자 참여 보장과 산별노조할 권리 쟁취가 전제 조건

문재인 정부는 노동은 물론이고 위기에 처한 중소부품·협력기업의 참여를 철저히 배제한 채, 재벌·대기업이 주도하는 산업전환을 설계·집행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금속노조가 ‘정의로운 산업전환’을 ‘선언’한다고 해도 정부가 이걸 받아 정책 방향을 수정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따라서 노동을 포함한 사회경제 주체들이 산업전환 정책의 수립과 이행을 위한 의사결정과정에 대등하게 참여해야 한다. 이 ‘민주주의’가 ‘정의로운 산업전환’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 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는 재벌공화국이라 불린다. 노동을 포함한 사회경제 주체들이 대등하게 참여하더라도 한국사회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노동자와 취약계층의 의견을 산업전환 정책에 제대로 반영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노동조합으로 뭉쳐 단체행동을 할 수도 없다. 현행 노조법과 판례는 산업전환 정책을 바꾸기 위한 쟁의행위를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조법 등 법 제도 개선으로 노동자들이 산업전환 과정에 집단 방식으로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정의로운 산업전환’ 실현의 전제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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