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금속노조는 지난 3월 2일 54차 정기대의원대회에서 11기 2년 차 사업계획과 2021년 투쟁방침을 바탕으로 2021년 통일요구안 산업전환협약 쟁취를 확정했다. 노조가 어떤 상황 인식으로 올해 교섭목표를 마련했는지 다섯 차례에 걸쳐 싣는다.

바야흐로 기후위기의 시대. 전 세계가 탄소배출을 줄이기로 약속하고 갖은 노력 중이다.

화석연료를 이용한 발전소를 줄이고 태양광이나 풍력, 수력 같은 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린다. 휘발유나 경유를 태워 동력을 만드는 내연기관 대신 배터리와 모터로 움직이는 자동차가 늘어난다. 철강업종은 석탄으로 만든 코크스 대신 수소를 환원제로 이용한 공법 개발에 전 세계가 나서고 있다. 조선업종도 친환경 선박 제조 기술 확보에 박차를 가한다.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줄거나 사라지는 산업이 생긴다. 화력발전소를 없애면 화석연료를 생산·공급하는 산업이나 화력발전 설비를 생산하는 산업은 규모가 줄거나 사라진다. 내연기관 자동차가 줄어드는 만큼 엔진 부품을 만들던 공장들이 사라진다. 제철 과정에서 코크스 대신 수소를 사용하면서 석탄 공급 산업이 영향을 받는다.

새롭게 커지는 영역이 있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늘면 태양광 패널과 풍력 발전 설비 제조산업이 커진다. 전기차가 많이 팔릴수록 배터리나 모터를 제조하는 기업의 규모와 수가 늘어난다. 이처럼 기존 산업의 일부 영역이 줄거나 없어지고 이를 새로운 산업이 채우는 과정을, 우리는 산업전환이라고 한다.

기술발전과 코로나 19 위기는 산업전환을 가속한다. 소위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르는 데이터(Data), 네트워크(Network), 인공지능(A.I) 기술을 토대로 스마트공장 구축 산업이 생긴다. 자동차 제조사는 하늘을 날거나 자율주행하는 운송 수단을 만들고, 이를 이용한 모빌리티 서비스로 사업 영역을 확장한다. 코로나 19에 따른 비대면 경제 활성화로 플랫폼 산업이 급성장한 것도 대표 사례다.

완성차는 투자 확대, 정부는 전환 지원

산업전환은 치열한 경쟁을 촉진한다. 자동차산업이 대표 사례다. 최근 수년간 전기차 시장이 급격하게 커지면서 주요 완성차 제조사들은 치열한 경쟁을 시작했다. 빨리 전환에 성공해 시장을 선점하겠다며 투자를 급격하게 확대하고 있다.

2020년 말, 점유율 세계 1위 완성차 제조사인 폭스바겐이 5년 동안 미래차 기술에 약 100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2021년 초 GM이 2023년까지 30조 원, 포드는 2025년까지 32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선언했다.

정부와 여당의 산업전환 정책은 취약 기업과 노동자의 희생을 전제한다. 아울러 재벌·대기업의 독점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환 정책은 결국 한국의 산업경쟁력에 악영향을 준다. 금속노조는 재벌 중심·노동 배제 산업전환 정책을 ‘희생과 파괴 없는 노동참여 산업전환’으로 바꾸는 투쟁을 시작했다. 사진은 현대자동차 E-GMP 플랫폼.
정부와 여당의 산업전환 정책은 취약 기업과 노동자의 희생을 전제한다. 아울러 재벌·대기업의 독점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환 정책은 결국 한국의 산업경쟁력에 악영향을 준다. 금속노조는 재벌 중심·노동 배제 산업전환 정책을 ‘희생과 파괴 없는 노동참여 산업전환’으로 바꾸는 투쟁을 시작했다. 사진은 현대자동차 E-GMP 전기차 플랫폼.

현대자동차그룹은 2019년 발표한 <2025 전략>의 수정본을 2020년 말에 공개했다. 현대차는 자료를 통해 내연기관 등 기존 사업 투자를 줄이되, 전동화와 수소사업 관련 투자를 10조4천억 원에서 14조9천억 원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각국 정부는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환 지원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전기차 보조금이나 세제 혜택은 기본이다. 보호주의 정책이 늘고 있다. 2021년 1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연방정부는 미국산 부품을 절반 이상 사용한 전기차만 구매하라는 ‘바이 아메리칸’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유럽연합과 미국은 탄소배출이 많은 나라에서 들여오는 수입품에 세금을 부과하는 ‘탄소 국경세’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역시 자국 산업을 보호해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취지다.

문재인 정부 산업전환 재벌·대기업과 짬짜미 … 노동자 희생은 관심 없어

축소·사멸하는 산업 영역에 속한 회사들이 사업 재편을 통해 새롭게 확대하는 산업 영역으로 온전히 옮겨가면 좋겠지만, 현실에서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금력과 기술력을 갖춘 재벌 대기업은 전환에 성공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갖추지 못한 중소기업은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

기업이 전환에 실패하면 고용한 노동자들이 큰 피해를 본다. 전환을 추진하는 기업들은 고용을 보장하는 대신, 기존 일자리를 없애고 무노조·저임금의 질 나쁜 일자리로 새로운 산업 영역을 채우기도 한다. 결국, 시장에 맡겨두면 대규모 실직과 양극화 같은 사회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정부의 산업전환 정책은 위기에 처한 기업과 노동자를 보호하는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마련한 산업전환 정책은 이 같은 내용은 매우 약하고 재벌·대기업 몰아주기에 집중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20년 10월 정부가 발표한 ‘미래자동차 확산 및 시장선점 전략’을 보면 ▲수소 관련 인프라 구축 ▲UAM·PAV 실증사업 및 규제 특례 등 사실상 현대차 맞춤 정책이 중심이다.

반면 부품사에 대한 정책은 사실상 없다.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식이다. 정부는 전체 자동차부품 기업 31%에 해당하는 2,800개가 내연기관차 전속 부품업체에 해당한다고 분류했다. 이 중 2030년까지 고작 1,000개 업체에 대해 미래차 전환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을 냈다. 나머지 1,800개 업체는 사라지게 내버려 두겠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 산업전환 정책이 재벌·대기업 중심인 이유는 정책을 사실상 재벌·대기업이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정부는 2021년 4월 출범한 탄소중립 산업전환 추진위원회의 민간위원을 모조리 재벌 그룹사 회장이나 대표이사에게 맡겼다. 중소 부품·협력기업이나 노동자의 의견은 전혀 반영할 수 없는 구조다.

문재인 정부는 2021년 2월 산업통상자원부 미래자동차산업과 과장과 범부처 자율주행기술개발혁신사업단 단장에 현대차그룹 임직원을 임명했다. 자동차산업의 미래전환 정책을 생산하는 기구의 핵심 책임자를 이 정책과 긴밀한 이해관계가 있는 재벌에게 맡긴 셈이다.

정부와 여당의 산업전환 정책은 취약 기업과 노동자의 희생을 전제한다. 아울러 재벌·대기업의 독점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환 정책은 결국 한국의 산업경쟁력에 악영향을 준다.

금속노조는 재벌 중심·노동 배제 산업전환 정책을 ‘희생과 파괴 없는 노동참여 산업전환’으로 바꾸는 투쟁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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