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발전특별위원회 소위원회들의 활동이 모두 끝나고, 이제 각 소위원회가 제안한 토론초안이 취합되어 조합 전체 토론에 부쳐질 차례이다. 이에 교육원은 교육소위의 결정내용 중 핵심을 이루고 있는 '교육연수원 건설'의 필요성과 의미를 조합원들과 폭넓게 공유하고자 <금속노동자 iLabor>의 문을 두드린다. 본 연재는 향후 약 10회 정도를 목표로 하고 있다 / 박장현 노조 교육원장

1) 조직발전특별위원회 교육소위원회 경과 및 결의
2) 왜 교육연수원이 필요한가?
3) 교육연수원의 요구와 역할
4) 국내외 사례
5)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

노동운동이 ‘위기’라고들 한다. 벌써 몇 번째인가? ‘위기’라는 말도 자주 듣다보면 약발이 떨어진다. 그래서 이번에는 ‘진짜’를 붙여서 ‘진짜 위기’라고들 한다. 뉘 집 개짓는 소리?

위기에 대한 자각은 소중한 것이다. 자각조차 못한다면 그것을 돌파하기 위한 첫걸음조차 내디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입으로만 ‘위기’를 떠들 뿐 그것을 돌파하기 위해 요구되는 피땀을 흘리지 않는다면? 그러면 ‘위기론’은 진짜 ‘뉘 집 개짓는 소리’로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언제나 위기는 객관적 요인과 주체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빚어진다. 그리고 언제나 노동운동은 주체적 요인을 재구성함으로써 객관적 요인을 변혁하는 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다. 이번에 닥친 위기도 예외로 될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 것인가?

위기의 주체적 요인을 한 마디로 요약하기는 어렵지만, 산별운동과 노동교육에 남다른 열정을 가지고 있는 한 활동가의 말을 들어보자. “최근 십수 년째 계속되고 있는 ‘노동운동 위기론’은 한 마디로 노동교육의 실패를 웅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모든 조직활동의 원천이 되는 ‘의식화’ 단계 즉 노동교육에 많은 문제와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경남지부 부지부장)

▲ 입으로만 위기를 떠들 뿐 그것을 돌파하기 위해 요구되는 피땀을 흘리지 않는다면 위기론은 뉘 집 개짓는 소리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장을 보자. 노동운동이 표방하는 이념과 강령이 구체적인 육체를 얻어 구체적인 동력으로 전환되는 첫 장소는 노동현장이다. 현장의 간부‧활동가들과 조합원들이 나서지 않는 이상 이념과 강령은 공염불로 될 수밖에 없다.

‘현장이 무너지고 있다’는 말을 들어온 지 오래 되었다. 이 말도 자주 듣다 보니 귀에 딱지가 앉았다. 얼마 전까지는 이 말이 현재진행형 표현으로 사용되어왔는데, 요즘은 아예 과거형 표현을 사용하여 ‘현장이 무너졌다’고 얘기되고 있다. 사용자가 노조대의원들과 현장활동가들을 장악하는데 성공하였고, 노동조합 선거를 마음먹은 대로 좌우할 수 있을 정도로 되었다는 것이다.

현장이 무너진 것도 다름 아닌 노동교육의 실패에서 한 가지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간부‧활동가 집단에 대한 교육의 실패에서 중요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산별운동과 노동교육에 헌신하고 있는 다른 한 활동가의 말을 들어보자. “자본은 이미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민주노조 진영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경영방침과 노무관리를 도입해 오고 있었다. 그와 함께 노조간부들의 포섭과 아울러 현장의 활동가 영역을 서서히 잠식해 들어오고 있었다. … 진보적 활동가들이 이념 논쟁과 정체성 논쟁을 벌이고 있을 때 자본은 회사의 논리를 대변하는 보수성향의 활동가들을 대거 발굴하고, 그들로 하여금 노동조합을 장악하게 만들었다.”(조합 감사위원)

요컨대, 사용자들은 지난 20년 동안 그들의 활동가집단을 양성하고 강화하기 위하여 갖은 투자를 마다하지 않았고, 그야말로 다양한 교육방법을 구사하였다. 사원교육과 기업문화운동은 기본이었다. 승진을 시켜주는 것도 교육의 일환이었고, 뒷돈을 대주는 것도 교육의 일종이었다. 술을 먹이는 것도 교육이었고, 여자를 붙여주는 것도 교육이었다.

결과는? 현장이 무너졌다!

사용자들이 양성강화해온 어용활동가들이 현장을 장악해버린 것이다. 그동안 노동조합은 과연 무엇을 해왔는가? 지난 20년 동안 노동조합이 ‘간부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실시해온 것은 실은 교육이 아니라 선전과 다름없었다. “○○년 정세와 임단투 방침”, “노동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자”, 매년 이런 교육만 되풀이 해왔다. 눈앞의 성과에 급급하여 간부‧활동가들을 체계적으로 양성하고 강화하는 일은 늘 뒷전으로 미루어왔다. 그 결과 노동조합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 간부‧활동가 집단을 재생산해내지 못하고 있다.

▲ 2008 금속노조 교육사업 실태조사
바로 여기에 위기의 뿌리가 있다. 노동운동은 교육에서 밀렸다. 지난 20년 동안 자본가들이 온갖 수단방법을 동원하여 현장에서 그들의 활동가들을 발굴하고 양성하고 강화하는 동안, 노동조합은 자신의 간부‧활동가들에게 ‘찌라시 교육’만 되풀이 해왔던 것이다.

현장이 저들의 손에 넘어가는 것에 비례하여 간부들이 조합원 핑계를 대는 횟수도 잦아지고 있다. ‘조합원들이 고령화 되고 의식이 보수화 되어서’ 예전 같은 투쟁을 추동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누가 더 고령화 되어 있고, 누구의 의식이 더 보수화 되어 있을까? 조합원들일까 간부들일까? 교육원의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간부들이 조합원들보다 더 보수적이고 더 반(反)산별적인 의식을 가지고 있다. 특히 대다수 기업지부 대의원들은 아직 산별노조를 자신의 노조로 여기지 않고 있다.

▲ 2008 금속노조 교육사업 실태조사
조합원들 핑계를 대는 간부는 실은 자기 얼굴에 침을 뱉고 있는 셈이다. 왜냐하면 조합원들은 간부를 닮기 때문이다. 조합원들은 1년에 10시간 정도 실시하는 조합원교육 시간을 통하여 조합을 배우고 느끼는 것이 아니다. 실은 집행부의 실천을 보면서 조합을 배우고, 간부들의 언행을 보면서 조합을 느낀다. 간부집단은 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조합원대중과 소통하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매일 조합원대중을 교육하고 있다. 그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 그들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조합원들에게는 생생한 교육인 것이다.

요컨대, 어용간부들은 조합원들을 어용조합원으로 빚어내고, 민주간부들은 조합원들을 민주조합원으로 빚어낸다. 오늘날 사용자들이 대의원들을 장악하려고 온갖 지저분한 공작을 시도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기업별노조 시절이 더 좋았다”, “우리 사업장에서 매년 금속노조에 올려 보내는 돈이 얼만데, 금속노조가 우리 사업장에게 해주는 것이 도대체 뭐 있느냐?”, 간부들이 날마다 때마다 이런 말을 되풀이 하는 곳에서 과연 조합원들이 산별노조에 대하여 긍정적인 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 우리는 ‘조합원들의 의식’을 논거로 제시하기 전에 우선 ‘간부들의 의식과 실천’을 점검해야 한다.

간부 및 활동가 집단은 계급형성의 열쇠이다. 투철한 신념과 전문적 실무역량을 갖춘 강력한 간부‧활동가 집단 없이 노동자계급을 단일한 집단행위자로 형성하려는 시도는 실패로 끝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이런 이유로 교육원은 <교육공세 : 금속노조 교육사업 발전전략 (토론발제안)>에서 간부‧활동가 교육을 ‘노조의 사활이 걸린 전략적 사업’으로 자리매김 할 것을 제안했던 것이다. 그리고 산별노조 시대가 요구하는 체계적인 간부‧활동가 교육을 실시하려면 반드시 교육연수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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